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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같은 육아책 -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읽고

by 꿈꾸는우주 201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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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같은 육아책 -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읽고

 

 

 

 

아주  오랜만에, 육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작은 도서관에 있는 '사서 언니'가 한번 읽어보라며, 괜찮은 책이라고 추천해줬다. 나는 제목만 보고,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워야 한다는 뻔한 얘기인가, 싶어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는데... 예의상 읽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펼쳤다가 앉은 자리에서 3시간만에 독파해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를 다 안다고 느낀 순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나 혼자 넘겨짚으며 맘을 놓는 그 순간... 오히려 이런 순간들을 경계해야 아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될 수 있을테니.. (그렇다고 모든 육아책에 마음이 동하면 안되겠지만...)  

 

20여년 간 정신과에서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 상담하고, 또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을 키워 낸 저자는 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 냄새'라고 말한다.  냄새는 기억을 부르고, 기억을 해야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가 엄마 냄새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333 법칙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333법칙은 하루 3시간 이상 아이와 같이 있어주어야 하고,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해당하는 3세 이전에는 반드시 그래야 하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져 있다 해도 3일 밤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3시간은 아이를 온전하게 자라도록 하는 매직타임이며 3년은 엄마의 냄새와 온도를 제공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치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

 

"아기 엄마들은 하루에 거짓말을 열두 번씩 한다고 한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면 낮에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는 둥, 뒤집었다는 둥, 기었다는 둥 수많은 무용담을 늘어놓지만 아이는 웬일인지 눈만 껌뻑일 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3시간 동안 자기를 바라봐주는 대상에게만 어느 순간 살짝 웃어주고 뒤집고 고개를 돌리는 선물을 준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서 10살이 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다. 어린시절 10년이 이후, 90년 의(100세까지 산다는 가정하에)  성공과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정서적 안정이 최우선 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책을 읽고 싶도록 해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 외에 공부를 지나치게 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실컷 놀게 하면서 학교 숙제만 지키게 한다. 숙제는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숙제는 사회와 하는 첫 약속이다. 4학년이 되면 아이의 적성과 성격에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 뇌의 개발을 도와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고 뇌를 발달 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지루한 것은 오히려 획일적인 중,고등학교 환경이다. 지루한 환경이 좋지 않은 이유는 뇌가 지루하다고 받아들이면 도파민이 더이상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흥미롭고 특히 예상하지 않았던, 도전해볼만 한 자극이 주어져야 분비된다."

 

사실 이런 내용들이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할 순 없다. 그동안 다른 책을 보면서 느껴왔던 것이기도 하고, 나도 내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키울 생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나에게 이 책이 '도끼' 같았던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사소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냈고, 남편에게 적어도 어떤 아빠가 되어주길,, 분명히 얘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만 해도 나에게는 적지 않은 성과다.

 

아침마다 아이는 밥 먹으면서 책을 보려고 하는데 나는 이것 때문에 아이랑 종종 실갱이를 해야 한다. 밥상을 책상에 따로 차려 달라고 하는 것은 차치하고, 내 입에서 수많은 잔소리가 쏟아진다. "그렇게 해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밥알을 세고 있냐, 반찬만 먹냐 "등등... 학교 갈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밥은 그대로이고 입 안에 물고만 있으니 속이 터진다. 그런데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읽고 나서 아이와 한가지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는 아침에 유치원 차를 타는 것에 모든 걸 맞췄다면, 앞으로는 조금 늦더라도 걸어서 가되(걸어가도 되는 거리다 ㅡ.ㅡ) 밥 먹을 땐 밥만 먹기로. 너무 쉬운 결정이지만 그동안은 차에 태워서 얼른 보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걸어서 데려다주는 일이 솔직히 너무 번거로웠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생각인데, 남편은 가장 우선시 하는 것, 그리고 본인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을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꿈일 뿐, 남편은 아이가 커서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직급도 올려놔야 하고, 이력이라 할 만한 상도 받아놔야 한다며 '사회적 위치'와 '명예'를 중요시한다. 지금이 한창 때라며 재테크에도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돈 없으면 자식 못 키울 것처럼 , 뭐라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 덕분에 자기 일에 더 열정을 갖고 매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분명하니까. 그래서 나 혼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음에도 '남편은 밖에서 나보다 훨씬 더 힘들텐데.. 몇 년만 더 참자' 생각하며 육아와 살림은 당연히 내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요즘들어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해진 아이를 보며 가슴이 철렁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전에는 그토록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던 아빠에 대한 태도에서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아빠한테 전화해서 빨리와라, 보고 싶다, 놀아줘라 했는데.. 이제는 시큰둥하다. 여섯 살 아이 입에서 "알아서 들어오겠지, 때되면 오시겠지, 나 지금 책 보느라 바쁜데? "하면서 모른척한다. 그러다가 통화가 되면, "아빠, 우리 집에 놀러와! 와서 자고 가" 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빠가 집에 오면, 행여 다시 나갈까봐, 밤에 자다 일어나면 또 없을 까봐 안절부절한다. 아빠가 옷 방에만 들어가도 회사가는 거냐고, 또 나가야 하냐고 몇 번씩 묻고. 처음에는 기가 막혔는데 지금은 나도 아이의 이런 반응에 익숙해져간다.

 

나는 몇 년 동안 '무직'이란 상태로 아이들만 키우는 것에 대해서 종종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에 젖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나 역시 이루고 싶은 나만의 꿈이 왜 없겠는가하면서도 지금은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몇달 동안 아이가 잠들면 일어나서 '내 시간'이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 이것저것 했는데 아침마다 비몽사몽에 낮에는 졸기 일쑤라 사실 몸도 마음도 괴로웠었다. 그런데 '하루 3시간 엄마 냄새'에서 나온 몇몇 구절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돈을 벌고 성공하려고 할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들보다 잘나고 잘 살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가보면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욕구는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에 무언가 하나를 남겨놓겠다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욕구를 해소했다. 그것도 진통을 앓으며 아주 요란하게. 그럼에도 자신이 창조한 진품은 집에 쑤셔 박아놓고 이미 세상에 있는 것들, 너도 있고 나도 있는 사소한 것들로 채워 넣기 바쁘다." 

 

"영국의 아동심리학자 스티브 미덜프는 "우리 인생의 몇 년을 어린 아이들에게 주어도 될 만큼 우리 인생은 충분히 길다"

 

다음은 류시화의 잠언 집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다.

 

성장한 아들에게

 

내 손은 하루 종일 바빴지.

그래서 네가 함게 하자고 부탁한 작은 놀이들을

함께 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이 내겐 많지 않았어.

 

난 네 옷들을 빨아야 했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해야 했지.

네가 그림책을 가져와 함께 읽자고 할 때마다

난 말했다.

"조금 있다가 하자, 얘야"

 

밤마다 난 너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주고,

네 기도를 들은 다음 불을 꺼주었다

그리고 발끝으로 걸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지

난 언제나 좀 더 네 곁에 있고 싶었다.

 

인생이 짧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갔기 때문에

한 어린 소년은 너무도 빨리 커버렸지.

그 아인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소중한 비밀을 내게 털어 놓지도 않는다.

 

그림책들은 치워져 있고

이젠 함께 할 놀이들도 없지.

잘 자라는 입맞춤도 없고, 기도를 들을 수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어제의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한때는 늘 바빴던 내 두 손은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하루 하루가 너무도 길고

시간을 보낼 만한 일도 많지 않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 네가 함께 놀아 달라던

그 작은 놀이들을 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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