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태국 한달 살기

1편) 시작은 무모했다

by 꿈꾸는우주 2017. 3. 27.
반응형

태국 자유여행 - 두 아이와 한달 살기

 

1편) 시작은 무모했다

 

무슨 바람이 들었던 걸까.

2년 전,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둔 딸아이와 48개월 된 아들 녀석을 데리고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애초 계획은 혼자 아이들만 데리고 한 달 동안 외국살이를 해보는 것.

걱정이 되었던지 남편이 이틀동안 휴가를 내고 따라나섰다.

우리가 숙소에 잘 도착하는 것까진 확인해야 한다면서.

 

하긴, 남편 심정도 이해가 갔다.

내가 워낙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모험이라는 단어하고는 거의 절교하고 살았으니.

오죽하면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들조차 단번에 "에이~ 설마. 정말 갈꺼야" 그랬을까.

그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됐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니,

 

가장 큰 이유는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생각됐던 한 지인이 무려 3개월 동안, 세 아이들만 데리고 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는데

그 집의 막내는 우리 아이보다 20개월 정도 어렸다. 그런데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인의 용기가 부러웠던 것이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이 동했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이유는 오소희 작가의 책이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라는 여행 에세이.

책에는 오소희 작가와 그녀의 아들, 세 살배기 중빈이 한 달 동안 터키에서 생활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고생한 얘기도 많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희한하게 고생한 그녀를 동경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저가 항공사를 통해 충동적으로 얼리버드 방콕행 비행기표를 끊은 것은.

사실 처음에는 50일을 계획하고 가장 저렴한 가격의 비행기표를 샀다.

떠나는 날짜도 최저가, 돌아오는 날짜도 최저가인 티켓으로.

 

그런데 하루 하루 지날 수록,  과연 이 아이들과 그 긴 시간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영어도 못하고 태국어는 더더욱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눈 앞이 깜깜해졌다.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께서도 볼 때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고.

 

결국 수수료를 물어가며 돌아오는 날짜를 바꿨다.

여행기간은 총 32일이 되었다.

솔직히 더 앞당기고 싶었으나, 그래도 기왕 계획한 거 한 달은 있어보자는 마음으로 내 안의 소심이를 잠재웠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불안증이 심해졌고.

급기야 나는 한국으로 시집온 태국 새댁에게 한 달 동안 속성으로 태국어 여행 회화를 익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둘째 녀석이 폐렴으로 입원을 하고 말았다.

여행을 목전에 두고.

내 인생 최대의 모험이 될 것 같은 이번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아이의 상태가 발목을 잡다니.

고민이 되었다.

 

'아.. 그냥 가지 말까?'

 

 

 

하루 빨리 퇴원하기만을 바랐는데 아이의 상태는 빨리 나아지지 않았다.

여행가기 전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놔야겠다는 목표는 있었으나 제대로 실천을 못한 탓이었다.

감기초기 증상을 보일 때, 그냥 집에서 케어했어야하는데

이래저래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던 것이다.

몇날 며칠 자책하다보니, 여행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우리 그냥 여행가지 말까? 다음으로 미룰까?"

 

고민하며 말을 꺼내자, 초등학생인 딸아이의 반응은 생각보다 어른스러웠다.

 

"그럼, 아빠 시간 많을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 게 어때?"

 

아빠도 없이 한달동안 나가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큰아이는 속으로 은근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링거를 달고 있는 작은 아이는 꼭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떼를 썼다.

얼마나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얼마나 갑갑하게 있어야 하는지 아직 잘 몰랐으니.

 

이런 상황에서 가야 한다! 아니, 가지 말아야 한다! 한 번에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정말 부럽다.. 아, 이 결정장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성격이라 도움 받을 곳도 없는 타국에서 아이가 더 아파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집안 어른들께서는 또 얼마나 걱정을 하실지 등등 별별 고민이 다 되었다..

결국, 나는 조금 비겁해지기로 했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께 묻기로 한 것.

이런 상황에서도 가는 게 맞는 건지 대신 선택해주길 바란 것이다.

 

그런데 두 분 모두, '조심히 다녀와야지' 하셨다.

태국은 따뜻하니까 괜찮지 않겠냐 하시면서.

 

휴우....

어른들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새삼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 한마디에 근심걱정이 70%는 사라지다니.. 참 신기했다.

그래서 힘을 주는 말 한마디가 정말 도움이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니면 정말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이 상태 회복에 올인하기로 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병원과 한의원을 돌며 비상약을 챙겼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 가면 좋겠지만, 가야 한다면 조심히 다녀와야죠..."

 

그래! 조심히 잘~~ 다녀오자!!

그럼 되겠지..

 

*

 

2015년 12월 12일.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학교를 빠진다고 엄청 좋아라 했던 큰아이와 아파서 살이 쏙 빠진 둘째를 데리고...

아이들은 저기 비행기가 있다고 소리 치고, 가까이 가보자고 성화였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지자 점점 지쳐갔다.

급기야 둘째는 밥도 못 먹고, 힘들다며 잠이 들었다.

 

아,,, 내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왜 여기까지 왔나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 우울한 상황을 한방에 날려주는 아주 고마운 녀석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웃음을, 부모에게는 휴식을 주는,,,,

바로 스마트폰, 아니 스마트폰으로 보는 영화!

 

인천에서 방콕까지.. 

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견디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남편이 영화를 다운받아온 것.

휴우.....

저렇게 어두운 곳에서 보다가 눈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일랑은 잠시 접어뒀다.

나도 좀 쉬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아이들도 한두 시간 정도는 잠을 자주었다.

 

Thanks, honey...

 

 

 

 

 

 

 

반응형